지난달 24일 20세 이진영(가명)군이 추락해 숨진 부산 영도구의 아파트 신축 현장. 이진영군 부모 제공부산의 한 건설 현장에서 20대 젊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스스로 건설 현장에 발을 들인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부산CBS는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고 반복되는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막을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는 연속보도를 마련한다.▶ 부산 영도구 건설현장 20대 추락사 연속보도 |
① "생활비 벌려다" 건설현장 뛰어든 휴학생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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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창이던 여름날, 부산 바다로 둘러싸인 고층 아파트 건설현장 24층에서 한 20대 작업자가 떨어졌다.
[관련기사 08.25 CBS노컷뉴스=부산 영도구 아파트 공사현장서 20대 작업자 추락사] 고작 스무살이었던 이진영(가명)군은 아버지의 안전화를 신고 일하다 환기구 안으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대학교 휴학 중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건설현장으로 출근한 지 이틀 만이었다.
언젠가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던 이군은 세상에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길로 향했다.
꿈 많고 다정하던 아들…"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하다 떠나"
한국해양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진영군이 입대 전 사회생활을 경험하겠다며 휴학을 결심한 건 1학년을 막 마친 뒤였다.
혼자 힘으로 살아보겠다며 올해 초 당당히 독립을 선언한 이군은 택배 상하차와 물류작업 등 일을 시켜주는 곳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했다.
최근 갑작스러운 해고에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 이리저리 뛰었지만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이군은 '건설현장'이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이군 어머니는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이것저것 하려고 하는 게 기특하고 고맙기도 했다"며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 자기 딴에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덧없이 가버리니까 가슴이 정말 타들어가는 것 같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딸처럼 다정하고 섬세한 아들이었던 이군을 마지막으로 본 건 사고가 발생하기 며칠 전 버스킹 공연에서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한 이군은 대학교 밴드 동아리에 소속돼 보컬로 활동했다. 그날 공연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하던 모습이 어머니가 본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건설현장 권한 내가 죄인"…유품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안전화
스마트이미지 제공이진영군의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30년 간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군에게 건설현장 근무를 적극적으로 권유한 것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다 자신의 탓 같아 후회스럽기만 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군 아버지는 "아빠도 건설현장에서 일해서 먹고 사는데, 젊은 나이에 이런 일도 해봐야 다른 어려운 일도 하지 않겠냐고 아들한테 강하게 이야기를 여러 번 했었다"며 "내가 이 일을 하라고 떠밀어 이렇게 된 것 같아서 다 내 탓 같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가 죄인인 것 같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을 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군은 어머니의 걱정에 "아빠도 평생 이 일을 하셨는데 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대답하기도 했다.
무뚝뚝한 아버지였던 이씨는 건설현장에 나가게 된 아들에게 살가운 말보다 자신이 사용하던 튼튼한 장갑과 안전화를 건네주는 것으로 걱정과 애정을 표현했다. 이군도 자신의 발사이즈보다 작은 아버지의 안전화가 잘 맞는다며 받아 들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마지막으로 받은 소지품에 바로 그 신발이 있는 걸 보고 아버지는 무너져 내렸다.
이씨는 "사고를 당한 마지막 순간에도 내 신발을 신고 있었다"며 "신발이 작아 발이 아팠을텐데 아버지가 준 거라고 그걸 신고 일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업체는 아들 부주의 탓해…원청도 사고 책임엔 '뒷짐'
연합뉴스 제공이진영군은 24층 공사현장에서 환기구 수직통로로 떨어져 숨졌다. 환기구는 덮개로 덮여 있었지만, 고정도 안 된 얇은 철판이 성인 남성의 무게를 버틸 순 없었다.
고층인 만큼 추락 위험이 컸지만 환기구 주변에는 안전펜스조차 없었다.
이군 부모들은 업체들이 제대로 된 안전조치도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는 사고를 아들의 과실로 돌리려 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업체의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자꾸 왔다갔다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아이가 추락하는 장면을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이제 출근한지 이틀째인 초짜를 위험한 고층에서 혼자 일하도록 방치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원청업체의 무책임한 '형식적 위로'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한 번 더 할퀼 뿐이었다.
이씨는 "자신들이 발주한 공사인데 원청은 '위로를 전한다'더니 사고 책임에는 뒤로 쏙 빠져 있는 상황"이라며 "건설업체들이 안전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안일하게 공사를 하다 아들이 꽃다운 나이에 허무하게 떠났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